‘지방소멸’이라는 말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닙니다. 인구가 줄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지방에서는 학교, 병원, 상점에 이어 이제 ‘금융기관’까지 사라지고 있습니다. 한때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지방은행 지점, ATM, 보험설계사 네트워크는 빠르게 축소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금융 접근성이 떨어지고 고령층의 금융소외 문제가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지방 금융 인프라가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지, 그로 인한 경제적 여파는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남겨진 지역을 위한 대응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봅니다.
사라지는 지역 금융의 실태
금융위원회와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전국 은행 점포 수는 1,500개 이상 줄었고, 이 중 상당수가 지방 소도시에 위치한 지점이었습니다. 특히 지방은행들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비수익 점포를 통폐합하거나 완전 철수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은행 창구를 이용하는 고령층 주민들은 수십 km 떨어진 인근 도시까지 가야만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ATM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지비용 대비 수익성이 떨어지는 지역에서는 ATM을 철거하거나, 편의점 내 협약을 종료하면서 실질적으로 현금 접근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추세가 ‘디지털 금융 전환’이라는 명분 아래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터넷·모바일 뱅킹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 문맹률이 높은 지역 주민, 농어촌 인프라가 부족한 곳에서는 실질적인 금융 소외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보험설계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방문 상담이 중심이었던 보험 채널은 디지털 전환과 수수료 구조 개편으로 인해 지방 영업망을 유지하기 어려워졌고, 이에 따라 농어촌 지역의 고령자들은 보험 가입뿐만 아니라, 해지, 보상청구, 계약변경 등 기본적인 절차조차 원활히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이는 단순한 ‘채널 변화’가 아니라, 생활 기반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금융 인프라 축소가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
금융 인프라는 단순히 돈을 맡기거나 인출하는 장소를 넘어, 지역 경제의 순환을 촉진하는 중요한 기반입니다. 중소기업 대출, 지역 소상공인 운영자금 지원, 마을단위 공동구매 대금 정산 등 다양한 금융 흐름이 지방 금융기관을 통해 이뤄져 왔습니다. 하지만 지역 은행이 철수하고 보험설계사조차 접근하지 못하게 되면서, 이러한 경제 활동은 자연스럽게 위축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에는 지방은행이 지역 공공기관과 협약을 통해 재정 집행을 효율화했으나, 최근에는 대형 시중은행이나 서울 본사 중심 체계로 편중되면서 ‘지역 자금의 역외 유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즉, 지역에서 발생한 돈이 지역에 남지 않고 외부로 빠져나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지방의 내수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또한 금융 인프라의 축소는 청년 인구의 이탈을 가속화합니다. 창업 지원, 신용 보증, 금융 상담이 가능한 창구가 사라지면 지역 청년은 사업을 시작하거나 확장하기 어려워지고, 결국 지역을 떠나게 됩니다. 이는 지방의 인구 감소 → 서비스 축소 → 경제 위축 → 인구 유출이라는 악순환을 더욱 빠르게 돌리는 원인이 됩니다. 결국 금융 인프라의 부재는 단순한 불편함이 아닌, 지역의 생존과 연결된 문제입니다.
디지털 금융 전환, 모두에게 공정한가?
정부와 금융기관은 디지털 전환을 지역 금융 축소의 해법으로 제시합니다. 모바일 앱, AI 상담, 키오스크 등을 활용한 비대면 서비스가 지역 격차를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고령층의 디지털 문해력은 여전히 낮고, 지역에 따라 통신 인프라나 모바일 기기 보급률조차 차이가 큽니다. 게다가 금융 관련 사기를 우려하는 고령층은 비대면 거래 자체를 회피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디지털 금융 서비스는 종종 ‘도움을 줄 사람’이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ATM이 사라진 자리에 설치된 키오스크나, 어르신을 위한 ARS 상담은 사용법을 배우기조차 어렵습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디지털 전환은 공정한 접근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존 격차를 더 확대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입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디지털 금융 도우미’를 파견하거나, 이동형 은행 차량, 원격 상담 창구를 운영하는 등의 대안이 마련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제한적입니다. 결국 디지털 전환만으로는 모든 지역과 연령을 포괄할 수 없으며, 하이브리드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점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결론: 금융이 사라지면 지역도 무너진다
지방소멸은 단지 인구의 문제가 아닙니다. 학교가 사라지고, 병원이 없어지고, 은행이 철수하는 순간, 한 지역은 더 이상 ‘생활 가능한 공간’으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특히 금융 인프라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지역 경제의 순환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적 장치입니다. 그것이 무너지면 지역은 자생력을 잃고, 생존 가능성조차 희미해집니다.
따라서 단순히 ‘디지털로 대체하자’는 접근은 한계가 있습니다. 지역 맞춤형 금융 전략, 공공금융 확대, 지역 밀착형 설계사 제도 복원 등 다양한 방식의 지원과 보완이 필요합니다. 또한 디지털 금융 교육을 통한 문해력 향상, 커뮤니티 중심의 금융 플랫폼 개발도 동시에 진행돼야 합니다.
지방의 금융이 무너지면, 곧 그 지역의 경제와 공동체도 함께 무너질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의 지속가능성과 직결된 구조적 과제입니다. 금융은 생존 인프라입니다. 그것이 무너지는 속도를 늦추고, 회복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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